반응형

'나는 운이 좋다'
저자인 사이토 히토리는 일본 개인 납세액 1위를 기록한 부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부자가 되는 운을 불러들이는 56가지 법칙을 소개한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운이나 끌어당김과 같이
보이지 않는 힘을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다.
성공학 책을 읽을수록 물체의 세상이 다가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저자는 복잡해 보일 수 있는 문제들에 명쾌할정도로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세상의 한 면만 보려는 시각을 깨 부수어주는 책이다.
저는 스스로에게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 후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생은 신나게 놀다 가는 것이다.'
저는 즐겁게 놀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에게 있어 일은 곧 놀이입니다. 삶도 곧 놀이이고요. 기왕 노는 거라면 즐겁고 신나게 놀아야겠지요. 그래서 저는 항상 '어떻게 해야 즐겁고 신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사업을 시작하고 매출이 올라가고 나라에 내는 세금이 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일본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게임을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을 하는 데 있어 다음과 같은 룰을 정했지요.
'주식과 부동산에는 절대로 손대지 말것.'
오로지 사업에 의한 소득만으로 승부하자는, 다소 불리 한 조건을 내세운 것입니다. 왜냐고요? 그쪽이 더 스릴 있고 재미있으니까요.
축구도 발로만 공을 찰 수 있으니까 재미있는 겁니다. 그런 조건하에서 공을 뺏기도 하고 태클을 걸기도 하고 슛도 멋지게 막으니, 가슴을 죄며 즐길 수 있는 것이지요. 아무런 룰도 규칙도 없고 손으로 공을 만져도 된다면, 결코 재미있지 않을 겁니다. 여러 가지 제한이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구석도 있으니, 이런 시합이 재미있는 게 아닐까요?
p. 25
인간의 육체가 허물어지고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사회적 지위나 돈을 비롯하여 사는 동안 가졌던 모든 것을 이 세상에 놓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천명을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다.”
천명이란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신과 나눈 약속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란, 바로 웃는 얼굴로 애정이 담긴 말을 하는 것이지요.
물론 사람마다 천명에 대한 정의는 다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왜 인간이 태어날 때 신과 이런 약속을 하는 걸까요? 그건 신이 웃는 표정으로 애정이 담긴 말을 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신은 풀과 나무, 곤충과 새,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것을 창조했지만, 단 한 가지 창조하지 못한 게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사랑’이죠. 신은 자신의 위대한 사랑을 직접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웃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있는 인간이 신을 대신해 이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겁니다.
아마도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신이 이런 부탁을 했겠지요.
“나 대신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애정이 담긴 말을 해 주길 바란다.”
이 부탁을 들어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신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니, 당연히 신도 그 사람의 꿈이 이뤄지게 도와줄 겁니다.
저에게 있어 신은 구걸의 대상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내가 어떻게 하면 신을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명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천명을 지키면 적이 사라집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편으로 만드니 직장 생활이든 사업이든 잘 풀릴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삶의 모든 면이 순탄해집니다.
p. 32
세상에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습니다.
(…)
그럼,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뭘까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으면 됩니다. 자꾸 고민하니까 괴로운 겁니다.
고민하지 마세요. 그러면 괴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철학이 필요합니다.
제 말을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철학이 무조건 현실 도피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다 해결하고 난 다음에 현실을 직시하자는 겁니다. 저는 이러한 철학을 가진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불황이 닥쳐도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 행복하게 생각하자’는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고객을 즐겁게 만들 수 있습니다.
늘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비록 뒷골목에 조그만 가게를 열었다 해도 ‘뒷골목만이 풍길 수 있는 분위기를 활용해서 고객을 끌어모아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장소를 100퍼센트 활용할 수 있는 지혜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장사도 잘되겠지요. 그리고 나중에 다른 곳에 가게를 열었을 때도, 뒷골목에서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장소를 멋지게 만들 수 있는 지헤 또한 분명 떠올리게 될 겁니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가게의 위치가 좋지 않으니까 손님이 안 오는 거야.’라고 탄식만 하고 있다면, 이런 지혜는 결코 떠오르지 않겠죠. 설사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긴다 해도 상황이 좋아질 리는 없을 테고요.
p. 51
사실 이 세상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단순하죠.
(…)
그중 하나가 바로 “운이 좋다.”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이 말을 하면 실제로 운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단순하단 말야?’ 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테죠. 하지만 해답은 늘 단순합니다. 단순한 게 최고 아닌가요?
(…)
만약 여러분도 이게 이해가 안 간다면, 그저 “운이 좋다, 운이 좋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리고 ‘운이 좋다’고 하다 보면 자연스레 기분 좋은 일을 생각하게 될 겁니다.
(…)
저의 제자들도 원래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이 말의 위력을 가르쳤더니 모두 자신의 회사를 가지게 되었고 사업에도 성공하여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해도 사람들은 잘 믿질 않습니다. 사실 제가 여러분의 입장이라 해도 절대 안 믿었을 겁니다. 따라서 이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정상인 겁니다. 그러니 이때도 ‘아, 나는 정상인이구나. 난 운이 좋구나!’ 이렇게 생각하세요.
하루하루 살다 보면 여러 일을 겪게 되지만, 어떤 말을 내뱉은 다음, 말끝에 꼭 ‘운이 좋다’는 말을 붙여보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이런,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오네.”라고 말했다면, 그러고 나서 바로 “하지만 난 운이 좋아.”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게 뭐가 운이 좋은 거냐고요? 그런 것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운이 좋다.’라고 생각하면 충분합니다. 이유를 따질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그 시간에 ‘운이 좋다’고 말하는 게 좋습니다.
p. 68
두려움을 없애려면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
그중 가장 골치 아픈 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이 멋대로 만드는 제약’입니다.
마음이 만든 제약, 저는 그것을 ‘두려움’이라 부릅니다. 뭔가 새로운 일,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과 마주하면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는 법이죠.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자기가 싫어하는 일이 바로 ‘한계의 벽’을 만듭니다.
(…)
누구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도망칠 수만 있다면 도망가고 싶어 합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을 비우고 한번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자신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도 한번 해보면 한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깜짝 놀랄 기적이 일어납니다.
p. 82
그런데 사람들은 창피해지는걸 굉장히 싫어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한테서 ‘남부끄러운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지요. (…)
인간이 새로운 일을 도전하면 열 번 중 아홉 번은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뭔가 시도를 할 때마다 창피를 당하는 숫자는 늘어나죠. 또, 실패하면 당연히 창피하고요.
그런데 ‘창피한 짓을 하면 안 된다’라는 가르침은 사람을 위축시킵니다. 창피를 당하면 ‘아,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저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회사의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창피한 경험은 얼마든지 해도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창피한 경험을 하면서 성장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저 역시 이제껏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습니다. 저도 10년 전의 제 모습을 떠올리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때 창피함을 경험한 덕분에 저도 10년 전보다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나는 참 어리석었구나!’ 하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
사람은 창피하다고 느낄 때 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되고, 그만큼 나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피한 경험을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돌파구를 열 수 있는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되겠죠.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모르는 게 있으면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됩니다. 물론 물어보는 것은 창피한 일이지만, 모르는 걸 물을 수 있으니까 그 사람은 성장할 수 있는 겁니다.
p. 148
일이든 공부든 마찬가집니다. 인생은 ‘OX 문제’를 푸는 것과 같습니다. 하여튼 뭔가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난 운이 없는 놈이야.’라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OX 문제 답안지에 아무 답도 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대부분 자기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질 못하거든요.
재밌게도,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머리가 너무 좋아서 그런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혼난 일, 자신이 실패한 경험 등을 모두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이런 일을 하면 또 혼날 텐데…….’, ‘난 운이 없어서 안 될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해버립니다. 결국 나중에는 도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지요.
사회에서는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에 행동하라.’라고 가르치곤 하는데, 이것저것 다진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자신이 한 일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직접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딜 때만 알 수 있습니다. 즉, 해답은 뭔가를 행동으로 옮겼을 때만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스스로 운이 없다고 생각해버리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게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실패할 위험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아무것도 안하는 인생, 도전하지 않는 인생이야말로 정말 재미없고 지겨운 삶입니다. 사실 이런 삶이야말로 실패한 인생인 거죠.
물론 뭔가를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실패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뭔가를 해서 잘되지 않았다는 것은 곧 ‘이 방식으로는 안 되겠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좋은 공부를 했구나. 덕분에 많은 걸 배웠어.’
‘그래도 일찍 실패를 맛봤으니 다행이야. 역시 난 운이 좋아!’
실패했을 땐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마련이죠. 그리고 다시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면 됩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이 반복 될 때 비로소 성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가령, 가게에 손님이 없는 날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날은 아래와 같이 생각하면 됩니다.
‘오늘은 손님이 뜸하네. 새로운 손님을 끌어들일 아이디어를 짤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 나는 운이 좋군.’
운이 없다고만 생각하면 뭔가를 하려는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이대로 손님이 없으면 정말 큰일인데…….’ 하는 푸념만 늘어날 뿐입니다.
‘운이 좋다’는 말의 힘을 빌려 힘차게 한 걸음 내디디세요. 결과와 상관없이 한번 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새로운 아이디어, 성공을 위한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운이 흘러들어옵니다.
‘운이 운을 부른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뜻합니다.
p. 159
저는 인간의 머리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하지요.
‘성공은 눈과 발로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만약 당신이 장사를 하고 있는데 장사가 잘되는 법을 알고 싶다면 장사가 잘되는 가게를 ‘보러’ 가면 됩니다.
(…)
알아보기가 귀찮으니까 모르는 겁니다. 뭔가를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금방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성공의 비결은 눈과 발입니다.
p. 166
저는 이런 가정에서 자라왔기에 누군가 부탁했을 때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장사를 하지 않는 집안의 사람은 이렇게 일일이 대답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예절만 지키면 칭찬을 받았을 겁니다.
이런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부탁을 받았을 때 대답하지 않는 것을 나쁜 행동이라고 여기지도 않지요. 따라서 제가 암만 대답을 하라고 주의를 준다 해도 저를 잔소리만 하는 시끄러운 사람이라 여기고 따르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상대방을 바꾸려 하면. 오히려 자기가 싫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사실 자기가 살아온 방식이 암만 옳다고 여겨도 다른 곳에서는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요.
서로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주장만 하다 보면 끝이 안 납니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좋게 유지하려면,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신을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
이런 사람을 보면 ‘10분 전부터 미리 나와서 기다리는 나는 뭐지?’하는 불만이 생기기도 하지만, 내가 그 정도 그릇밖에 안 되는 인간이니까 이런 수행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입니다.
p. 179
싫은 사람과 만날 시간에 행복해지는 일을 하세요
만나기 싫은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과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누구든지 자신과 코드가 안 맞는 사람이 주변에 한두 명 정도는 있을 겁니다. 물론 저에게도 만나기 싫은 사람이 있지요. 그러나 그 사람은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답니다.
왜냐고요? 답은 간단합니다. 제가 그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기 때문이죠. 만에 하나 만나야 한다면 잽싸게 도망가버립니다.
‘정말 그래도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고통받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골칫거리입니다. 코드가 안 맞는 사람끼리 얼굴을 맞대면 싸움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만나지 않으면 그런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겠지요.
만나기 싫은 사람은 그냥 안 만나면 됩니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게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면 자기도 모르게 군침이 돌지요? 마찬가지로, 싫어하는 사람은 아예 떠올리지도 마세요.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곧 머릿속에서 그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뜻하니까요.
‘그래도 이 사람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좋은 점을 발견해서 칭찬해줘야 할 텐데…….’
아무리 이렇게 생각해도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맞지 않는 법입니다.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을 좋아하려 해 봤자 자신만 고통받을 뿐이죠.
‘그래도 이 사람을 만나는 건 일종의 수양이다.’라고 여기며 굳이 스스로 고행을 선택하려 한다면, 그건 자유입니다만, 고통받는 게 자신만이 아니라면 어떻겠습니까?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괴롭히는 경우가 생깁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종종 있지요. 여러분 중에도 남편과 시댁에 갈때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한테 괴롭힘을 당하는 분이 있을겁니다.
그건 왜 그런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시어머니 입장에서 아들은 반갑지만 며느리는 반갑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안 맞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남편만 시댁에 보내고 자기는 안 가면 됩니다.
물론 참을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라면 참아도 됩니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싫은 사람이라면 굳이 만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일본에만 해도 1억 3천만 명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굳이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만날 이유는 없지 않나요?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 고통을 받으면서도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만나기 싫은 사람과 만날 시간에 자기가 행복해지는 일을 하세요.
그리고 이렇게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오랜만에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p. 182
반응형
댓글